각시박굴

화순투데이 | 기사입력 2022/09/30 [17:10]

각시박굴

화순투데이 | 입력 : 2022/09/30 [17:10]

▲ 시민논객 행정학박사/박상범  © 화순투데이

화순에서 백운촌이라는 마을을 지나 열두구부재를 넘어 국동이란 마을을 가다보면 각시바위골이 있다.

 

소년 시절에 살던 화순전남대병원 옆에 일심리 마을에서 작은재를 넘고 큰재에서 북동쪽으로 보면 계곡 아래에 각시박굴이 보인다.

 

아마도 각시바위골을 각시박굴로 동네 어르신들이 불어왔던 것으로 볼수 있다.

 

남자 서방바위는 전통혼례 때에 쓰는 사모관모 속에 상투를 틀고 있는 모습으로 보인다. 바로 아래에는 각시바위라는 붉은 색깔이 나는 널따란 바위가 치마폭으로 보이면서 공손히 큰 절을 하고 있는 모습이 신기하기도 하다.

 

지난 시절 KBS 라디오나 TV에서 듣고 보았던 전설따라삼천리에 나왔던 기억이 난다. 호기심 많고 꿈 많던 어린 시절에 신비의 세계와도 같은 각시박굴에 대한 전설이 바로 흘러 나올 듯 뇌리를 스친다.

 

그 옛날 머슴 돌덕이와 황부자 집 딸 별당 처녀가 생전에 사랑을 이루지 못하고 죽은 후, 각시바위골에 서방 바위와 각시 바위가 생겨나게 되었다는 암석 유래담이 있다.

 

이 서글픈 이야기는 돌덕이와 별당처녀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 마을 건너편 산 골짜기에 도깨비 수백명이 밤새 요란스럽게 소리를 질렀다. 마을 사람들이 다음 날 찾아가 보니 서방바위와 각시바위가 서 있고 처녀가 단장하기 위해 사용하는 경대와 빗을 닮은 경대바위와 빗바위도 옆에 있어 전설이 사실적으로 묘사된 듯 하다.

 

영국의 작가 루이스 캐럴의 아동소설인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같이 토끼굴 속으로 들어가듯 어린 시절 그곳에 가면 미지의 신비스런 정글과도 같이 느껴졌다. 그 계곡 깊은 곳 가을철에 가면 어름과 다래 열매가 줄렁 줄렁 달려 있다. ‘개호랑이라는 요즘으로 말하면 이라는 무서운 동물도 살아 있어 두려움에 혼자서는 갈수 없다.

 

꼬마 친구들과 대여섯명이 함께 가보는 것이 어린시절의 간절한 꿈 이었다. 어린 시절 동네 어귀에 옹기종기 앉아서 각시박굴 이야기가 나온다. 누가 용감하게 그곳을 갔다 왔는지, 문둥이가 살고 있다든지, 누가 어떤 것을 봤다는 등 오지의 탐험여행 이야기가 즐비하게 들린다.

 

지금 생각하면 교통이 발달하지 않는 옛날에 국동에 사는 사람들이 3일과 8일 화순장날이면 산길을 따라 굽이굽이 열두번을 돈다는 열두구부재를 넘어 온다. 화순장에 오면서 가면서 동네 이야기며 자식 이야기, 농사 이야기 등과 함께 이고지고 오는 짐보따리로 땀방울이 적셨을 것이다.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고생길이지만 그래도 필요한 생활필수품을 사고 가져간 농산물을 파는 장터의 훈훈함은 넉넉했을 것이다.

 

직장을 퇴직하고 고향인 화순에 귀향해 탯자리인 일심리 마을에 살면서 이러한 열부구부재의 애환과 미지의 세계와도 같은 각시박굴을 가보고 싶었다. 현재는 어떻게 변했는지 그 서방과 각시의 생활은 좋아졌는지 현대생활에 적응은 잘하는지도 궁금했다.

 

최근에 가까이 지내는 동네 선배들과 큰 맘을 먹고 함께 가기로 약속을 했다. 정말 시공을 초월한 장소로의 여행이라 생각되니 가기 전에 어린 시절 소풍가는 것 같이 마음이 설래었다.

 

지금은 화순읍이 택지개발로 도시화되면서 주변 등산로는 정비가 잘 되었다. 그 곳으로 가는 등산로는 중간 중간 정비되었고 열두구부길이나 큰재를 넘어가는 길은 인적이 끊어진지 오래된 채 방치되어 있었다.

 

어렴풋이 난 길을 찾아 지형을 살피면서 가야만 했다. 산에 소나무는 우겨지고 각종 이름 모를 나무들이 빽빽이 들어차서 갈수가 없는 곳도 있었다.

 

어렵게 각시박굴에 도착하니 우거진 숲으로 각시와 서방 바위의 형체가 알아 볼 수 없을 정도로 가려져 있었다. 그렇게 가보고 싶었던 곳에 도착해 보니 가슴 속에 그 토록 보고 싶었던 첫 사랑을 만났을 때와 같이 막상 보니까 신비감이 없어져 실망스러웠다.

 

주변에는 정원주택이라는 집이 한 채 있고 광주에서 왔다는 사람이 거주하고 있었다. 밭에는 농작물도 자라고 있었다. 그 아래 계곡에는 맑은 시냇물이 훌러 내리고 주변의 숲으로 운치가 좋은데 식당까지 밀고 들어왔다.

 

이러한 모습에 각시박굴의 옛 정취는 없어지고 각시와 서방이 살기 어려운 듯 옛 정취를 못느꼈다. 주변에 푯말이라도 세우고 각시바위와 서방바위 경대바위 빗바위도 볼 수 있도록 잡목제거도 하고 정비를 하면 돌덕이와 별당 처녀가 다시 오지 않을까 생각된다.

이 기사에 대한 독자의견 의견쓰기 전체의견보기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닉네임 패스워드 도배방지 숫자 입력
내 용
정치
尹 대통령 "가짜뉴스 추방·민주주의 수호 위해 디지털 규범 만들어야"
광고
칼럼/인물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