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진이퇴(難進易退)가 아쉽다

화순투데이 | 기사입력 2020/11/10 [10:30]

난진이퇴(難進易退)가 아쉽다

화순투데이 | 입력 : 2020/11/10 [10:30]

 “천하 만사 모든 일에 때가 있다.” 조 바이든 미국 제46대 대통령 당선자는 승리연설에서 성경의 구절을 인용했다. “세울 때가 있고, 수확할 때가 있으며, 씨 뿌릴 때가 있고, 치유할 때가 있다. 지금 미국은 치유할 때이다.”라고 했다.

  지혜의 왕으로 일컬어지는 솔로몬이 썼다고 알려진 ‘전도서’ 구절이다.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다.”는 경구로 유명한 바로 그 성경이다.

바이든은 선거기간 동안 첨예하게 찢기고 갈라진 미국의 민심을 추스르기 위해, 자신에게 제기됐던 신앙심 의혹을 해소하려 성경을 이용해 ‘치유’를 강조했다.

  원래 내용은 대구(對句) 형식이다. 바이든이 인용한 부분만 소개하면 “헐 때가 있고 세울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으며, 죽일 때가 있고 치유할 때가 있다.”는 것이다.

그가 말한 ‘치유’의 상대편에는 바로 ‘죽임’이 있다. 서로에 대한 ‘악마화’로 선거를 민주주의의 축제가 아닌 공멸의 전쟁터로 만든 현실을 우려한 심모원려(深謀遠慮) 발언이겠다.

물러날 때를 알아야

  그렇다고 쉽게 치유될 것 같지는 않다. 무엇보다 트럼프 대통령의 처신이 관건이다. 그는 패배를 인정하지 않고 법정투쟁을 다짐했다. 트위터를 통해 “나는 선거에서 이겼다. 큰 (표)차이로.”라면서. “합법적인 투표는 이겼는데, 민주당이 불법적인 투표지까지 개표하면서 승리를 훔쳤다.”고 주장한다. “선거는 아직 끝나지 않았으며, 연방대법원에서 가려질 것이다.”고 버틴다.

  범사에 기한이 있는데, 달도 차면 기우는데, 정작 자신은 물러날 때를 모르는 것이 아닐까. 결국 문제의 핵심도, 푸는 열쇠도 트럼프 본인이겠다. 권력의 맛에 도취된 공직자들이 종종 유종의 미를 거두지 못하고 회한의 뒤끝을 남긴다. 항룡유회(亢龍有悔)라 하지 않던가.

  공직자는 선공후사(先公後私) 자세가 필요하다. 조선 정조 시대다. 탕평책에도 불구하고 정치는 여전히 어지럽다. 선비들이 자리를 탐하기 때문이다. 정조가 탄식한다. “난진이퇴(難進易退)가 아쉽다.”

  벼슬에 어렵게 나가고 선선히 물러난다는 뜻이다. 어떤 자리를 제안받았다고 해서 앞뒤 가리지 않고 덥석 수락해서는 안 된다. 스스로 그 자리에 적임인지, 인사권자가 착각한 것은 아닌지, 그래서 결국 나라와 국민에 해를 끼치게 되고 스스로도 이름을 더럽히는 것은 아닌지 신중하게 생각해야 한다는 거다.

  열심히 공직을 수행했는데도 이런저런 사정에 물러날 때가 되면 좌고우면하지 말고 선뜻 물러나야 한다는 거다. 공직이 영원한 것은 아니지 않은가. 정조는 이러한 자세가 “조정(朝廷)을 높이고 세교(世交)에 도움이 된다”고 했다. 헛된 명리(名利)를 붙들고 매달리는 풍조에 예의염치(禮義廉恥)가 무너진다는 거다.

무늬만 선비 ?허튼 선비들이 넘쳐나-

  맹자가 말한 행장진퇴(行藏進退)도 같은 뜻이다. 무릇 공직자는 나아감과 물러섬을 알아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처신(處身)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인데, 어디 쉬운 일인가. 그래서 이는 선비의 으뜸 덕목이었다.

간혹 “물러나고 싶어도 어지러운 세상을 그대로 둘 수 없었다.”거나 “나라가 부르는데, 간곡하게 붙잡는데 뿌리칠 수 없었다.”는 이들이 있다. 현대판 ‘북곽(北郭)선생’이다.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 중 ‘호질(虎叱)’에 나오는 바로 그 무늬만 선비 말이다.

  공직자는 때를 가늠하는 지혜와 함께 ‘말’도 중요하다. 순자(荀子)는 ‘군자필변(君子必辯)’이라 했다. “묶은 포대자루처럼 입을 다물면 허물도 없지만, 영예도 없다.”고 했다. 단 백성을 위한 논변이라야 한다.

백성이 아닌 자신을 위한 논변은 비록 청산유수일지라도 허튼소리일 뿐이며, 국정의 재앙이라고 했다. 궤변은 난세를 부르고, 사람다운 사람의 말이 없어지면 나라가 망하는 법이라면서.

  트럼프에게 링컨의 통찰을 들려주면 어떨까. 링컨은 나름대로 인물 감별법을 터득했다. 비결은 간단하다. “인격을 알려면 권력을 줘보라!” 완장을 차면 본성이 나오듯, 권력을 쥐면 그의 사람 됨됨이가 오롯이 드러난다.

  이익(利益)도 그렇다. 조선의 재상 이원익은 “나는 평생 이익을 보면 먼저 그것이 부끄럽지 않은지 생각했다.”고 술회했다. 줄곧 권력 핵심에 있었지만, 물러났을 때 누옥 한 채 뿐이었다.

다산 정약용은 시를 지어 “궤 속의 옥(玉)은 공인도 알 수 없고, 군자는 비단옷 위에 홑옷을 껴입는다.”고 했다. 공직을 자신의 정치적 혹은 개인적 자산으로 활용하려는 ‘허튼 선비’들이 넘쳐나는 요즘의 귀감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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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박 종 권
· 호서대학교 AI융합대학 교수
· 언론중재위원

· 저서
<청언백년>, 인문서원
<기자가 말하는 기자>, 부키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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