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기에 담긴 뜻은

화순투데이 | 기사입력 2019/04/30 [09:58]

금기에 담긴 뜻은

화순투데이 | 입력 : 2019/04/30 [09:58]

 기피하는 말이나 행위를 가리키는 금기(禁忌, taboo)는 어디서나 발견되는 보편적인 문화 현상이다. 각 사회의 구성원들이 공유하는 금기들에는 대개 물질적 정신적인 기대가 복합적으로 얽혀 있다. 금기에는 또한 인간이 안고 있는 근원적인 공포가 숨겨져 있다고 한다.

그래서 인간의 힘이 미칠 수 없거나 인과론으로 설명되지 않는 영역들에 대해 유독 많은 금기 사항이 만들어졌다. 인체에 관한 정보가 미비했던 근대 이전의 사회에서는 임신·출산이나 건강·장수와 관련된 금기사항이 셀 수도 없이 많았다.

불장난하면 밤에 오줌 싼다!?

  금기에는 무엇보다 안전에의 욕구가 반영되었다. 불장난하면 밤에 자다가 오줌 싼다! 아이들의 불장난을 금기로 묶어 둔 것은 집이나 산천을 홀랑 태워버릴 수도 있는 불안감이 들어 있다. 금기를 위반한 초자연의 복수치고는 좀 약해 보이지만 자다가 요에 오줌을 싼다는 것은 어린 행위자들에게는 상당한 공포이다.

실제로 불장난과 오줌의 상관성에 대한 실험 결과가 나왔는데, 불장난으로 인해 유발된 흥분상태가 야간 방뇨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흥분과 긴장은 배뇨의 조절에 영향을 미치는데, 더구나 아이들은 그 조절 능력이 미숙하다는 설명이다.

  이처럼 심리적이고 생리적인 근거를 갖춘 금기어도 있지만, 대상에 대한 편견을 조장하거나 사람과의 관계를 왜곡하는 금기어도 있다. 그 사회의 이데올로기가 금기의 형태로 드러난 경우다. 세종대의 신숙주는 통신사로 일본에 갔다가 돌아오던 배 안에서 폭풍을 만났다.

배에는 일본의 포로가 되었다가 귀환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그들 중에 임신한 여자가 있었다. 뱃사람들은 일제히 “임신한 여자는 물길에서 꺼립니다. 물에 던져 재앙을 면해야 합니다”라고 했다.

신숙주는 “사람을 죽여 삶을 구하는 것은 나로서는 차마 못할 짓”이라고 하고 몸으로 임산부를 가로막으며 뱃사람을 설득했다. 얼마 뒤 태풍이 잠잠해져 배가 순항했다는데, 『연려실기술』에 나오는 이야기다.

  금기에는 공동체 구성원의 아픔과 기억을 공유하는 기능도 있다. 경북 지방의 한 종가(宗家)는 제사에 시루떡을 쓰는 것이 금기라고 한다.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는 말이 있듯이 떡은 제사의 간판이고, 그중 시루떡은 층층이 쌓아 올릴 온갖 떡의 버팀목이 되어야 한다.

물러도 안 되고 찰기가 없어도 안 되기에 시루떡은 주부된 자의 화두였다. 아무리 정성을 쏟아도 그날의 운에 따라 부서지거나 무너지기 일쑤인 시루떡. 이 종가의 윗대 한 며느리 역시 시루떡을 찌면서 거의 공포에 시달리던 참이었다.

그러던 어느 제삿날, 며느리는 떡시루 앞에서 목을 매어 자결한다. 뜸을 많이 들인 탓에 시루떡이 너무 물러졌던 것이다. 이 종가의 금기에는 시루떡 할머니의 애절한 마음을 위로하려는 뜻이 담겨있다.

공동체엔 ‘해서는 안 될 짓’이 있다

  자연 현상을 과학적으로 풀어낼 수 없었던 사회에서는 그 공포나 경이를 금기어로 담아내었다. 18세기의 『증보산림경제』는 당시 사회의 금기들을 소개하는데, “거센 바람을 원망하거나 장맛비가 쏟아진다고 욕하지 말라”든가, “하늘을 향해 속된 말을 하거나 마음속 원망 어린 말을 내뱉지 말라”고 했다.

또 “해와 달을 향해 대소변을 보거나 침을 뱉거나 눈을 부릅뜨고 바라보아서도 안 된다”고 했다. 인간과 자연은 한 몸이라고 하는 교감의 천인관(天人觀)이 빚어낸 금기어다.

   지금 보면 말도 안 되는 것들도 있지만 공포나 불안 등의 심리적 요인이 반영된 금기는 역사의 전개와 함께 사라지기도 하고 새로운 조항이 생겨나기도 한다. ‘해서는 안 될 짓’을 금기라고 한다면 지금 우리 사회에서 그것은 무엇들일까. 공동체의 금기를 어겼을 경우 복수는 누가 하는가. 해서는 안 될 짓, 준엄한 복수 등의 용어들이 머리를 어지럽히는 정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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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이 숙 인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책임연구원
· 한국 철학

· 저서
〈신사임당〉, 문학동네, 2017
〈정절의 역사〉푸른역사, 2014
〈동아시아 고대의 여성사상〉 도서출판 여이연, 2005
〈노년의 풍경〉글항아리, 2014 (공저)
〈일기로 본 조선〉글항아리, 2013 (공저)
〈선비의 멋, 규방의 맛〉글항아리, 2012 (공저) 등 다수

· 역서
〈열녀전〉글항아리, 2013
〈여사서〉도서출판 여이연,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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